<대구일보 종교인 칼럼 2007년 11월 16일> 범수스님 -버려야 할 것 -

 “삼쾌(三快)면 상쾌(爽快)해진다.”는 말이 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버리면, 건강해진다는 뜻이다. 이 세 가지는 매일 같이 반복되는 것으로 어느 것도 소홀히 할 수 없다. 그러나 먹고 자는 것은 즐거워도 버리는 것은 왠지 귀찮은 것이 인지상정일 것만 같다. 특히 수세식이 아닌 일명 푸세식 화장실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어릴 적 추억을 더듬는다면, 발판 삼아 판자 두 개를 양쪽으로 걸쳐 놓은 화장실부터 학교 화장실까지... 거기에다 달걀귀신에 그 무시무시한 “흰 종이 줄까, 노란 종이 줄까, 빨간 종이 줄까...”까지 보태지면, 아예 포기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던 같다. 그런데 산사(山寺)의 화장실은 여전히 그런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기에 충분한 곳이 많다. 특히 비가 오고 바람이 심하게 불거나 또는 야밤에 외진 곳에 자리한 그곳까지 가려면, 보통 마음으론 안 된다고 한다. 갈 땐 자꾸만 뒤돌아보고, 나올 땐 도망치듯 뒤도 안 돌아 보고 달리기까지 하니 말이다. 마치 영화 ‘달마야 놀자’ 일편에서 화장실에 들어간 조폭이 골탕 먹던 장면을 연상하면, 그 심정 백분 이해하고도 남는다. 그러나 하루라도 거르면 당장 건강에 지장이 생기니 안 갈수도 없는데, 오늘 이야기는 이와 관련된 것이다. 그런데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에 이렇게 냄새나는 이야기 때문에 언짢게 되었다면, ‘비워야 채운다.’는 좀 그럴싸한 측면에서 보면 어떨까 한다.
 사람 사는 곳이라면 반드시 갖추어야 할 곳 가운데 하나가 화장실이다. 요즘과 달리 옛날엔 처가(妻家)와 함께 멀리 떨어질수록 좋은 것으로 여겼다는 말도 있다. 그래서인지 전통의 흔적이 많이 남은 곳일수록 사람이 거처하는 곳과 멀리 떨어져 있다. 사찰도 예외는 아닌데, 거기에다 이런저런 규제에 묶여 있어서 을씨년스러운 곳이 많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불편을 겪는데,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사회에 널리 알려진 ‘화장실 고수’ 이야기의 무대가 되곤 한다. 어느 누가 무슨 수로 고수가 되든지 뒷정리를 깨끗이 해야 진정한 고수일 것이다. 그리고 요즘 ‘비데’라는 세정기기가 사회에 널리 보급되고 있다지만, 산사에선 옛날에도 그랬듯이 뒷물용 용기를 직접 들고 다닌다. 보통 손잡이가 달린 간장병 같은 것이 선호되는데, 전남 장성 백양사에 있었을 때의 일이다. 같이 공부하던 그 스님은 해우소에 갈 때마다 어디서 구했는지 그때도 보기 어려운 사홉들이 소주병을 들고 다녔다. 그런데 이 스님의 체격이 호리호리하고 왜소했으며 걸음걸이 또한 불안했다. 그래서 얼핏 보면 손에 소주병을 들었기 때문에 마치 곡차를 잡수고 비틀거리면서 걷는 것처럼 오해받기 십상이었다. 물론 뒷물용이지만, 이것을 모르는 참배객이나 관광객들은 벌건 대 낮에 소주병을 들고 화장실을 드나드는 스님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마 서로가 걱정스러웠을 것 같다. 의심스럽게 쳐다보는 시선에 의아한 눈빛이 더해졌다면 말이다. 그러고 보니 사찰에선 화장실을 그런 걱정마저 푸는 곳이라는 뜻에서 해우소(解憂所)라고 부른다. 기능적인 면보다 심정적인 면을 잘 담아낸 것 같아 여유마저 느껴지는데, 가끔은 바로 앞에 해우소라는 표지를 두고서도 화장실이 어디냐고 묻는 일도 벌어진다. 아마 글이 생소해서 그럴 것이다. 또 막상 안으로 들어가면, '입측오주(入厠五呪)'라는 낯설은 문구도 있다. 급하게 들어갔다가도 그 내용을 보면, 잠깐 동안 생각에 잠긴다고 한다. 용변을 보는 생리적인 현상도 의례화시켜 놓았기 때문인데, 그 속엔 버려야 할 것이 또 있다고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화장실에 들어가서 “버리고 또 버리니 큰 기쁨일세.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은 마음 이같이 버려...” 뒷물하면서 “비워서 청정함은 최상의 행복일세...”, 손을 씻으며 “활활활 타는 불길 물로 꺼진다...”, 더러움을 버리고는 “더러움 씻어내듯 번뇌도 씻자...”, 몸이 깨끗해지고 난 뒤에 “내 몸을 씻고 씻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