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일보 종교인 칼럼 2007년 10월 29일> 범수스님 - 수신(修身)과 수심(修心)-

 80년대 말 제주도의 어느 사찰에 있었을 때의 일이다. 절에서 숙식하던 취업준비생이 두 명 있었다. 그들이 거처하던 건물은 마당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었지만, 창문은 필자의 방과 마주보고 있었다. 사찰의 생활방식대로 저녁 9시에 잠자리에 들려고 하는데, 맞은편 방의 창문이 환하게 밝아 있었다. 순간 “출세(出世)를 위해서도 저렇게 늦게까지 공부하는데, 수도(修道)한다는 내가 시간에 맞춰 잠을 잔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하며, 말뚝 같은 신심(信心)으로 자리를 틀고 앉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처음의 각오와는 달리 두 눈은 감기고 허리는 구부정한 상태로 연신 절을 하듯 머리를 끄덕였다. 기지개를 펴고 창문을 보니, 건너편엔 여전히 불이 켜져 있었다. 자정을 가르키는 시계를 보며 자리에 누우면서 “새벽 3시에 일어나 예불을 해야 되기 때문에 어쩔 수없다.”며 스스로를 자위했다. 그렇게 서로 경쟁이나 하듯 3개월가량을 보냈다. 드디어 백일기도를 끝낸 뒤 그들과 함께 차를 마실 시간이 있었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뜬금없이 “스님 때문에 수신(修身)하듯 공부를 한다.”고 했다. 말뜻을 몰라 어리둥절해하는 모습을 보고는 자신들은 “목표가 분명하기 때문에 공부를 할 수밖에 없지만, 스님이 늦게까지 불을 켜고 공부를 하니 잠잘 수없다.”는 것이었다. 속으로 “아 그랬었구나.” 하며 “역시 같은 마음에 늦게까지 공부했다.”고 하자, 일순간 건강한 웃음이 고즈녁한 사찰 안을 메웠다. 물론 그 뒤에도 각자의 방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은 여전히 어둠을 밝혔다. 그렇게 지내던 중 특별한 볼일은 아니었지만, 차를 빌려 밖으로 나갈 일이 있었다. 한 참을 가다가 길을 잘못 들어선 것 같아 되돌아 나오려는데, 처음 다뤄보는 차종이라 후진 기어 조작이 낯설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그 차는 기어를 중립에 놓고 위에서 밑으로 눌러(push) 후진 쪽으로 밀어 넣는 것인데, 그것을 몰랐기 때문에 좌우회전을 포함한 직진밖에 할 수없었다. 운전대를 잡은 내내 경주마처럼 앞으로만 가는 자신이 왜 그렇게 우습던지, 결국 먼 길을 돌아서 되돌아 왔다. 이처럼 한갓 기계도 전진과 후진의 구분이 분명할진데, 인생에서의 진퇴문제는 더욱 명확해야 할 것이다. 언제 나아가고 물러서는지는 단순히 상황에 따른 처신의 문제라기보다는 자신을 다스리는 수신(修身)의 의미가 더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스로 자신을 다스린다는 것은 그리 녹녹치 않은 일임에 분명하다. 그것은 자리를 두고 벌어지는 여러 상황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높은 자리나 좋은 자리에 가려하고 또 얻지만, 그 결과가 모두 만족스러운 것은 아닌 것 같다. 극기에 가까운 수신과 노력 끝에 남들이 부러워하는 자리에 올랐지만, 지탄의 대상이 되거나, 영어(囹圄)의 몸으로 변하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일이 벌이지기도 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수심(修心)도 그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어떻게 마음(用心)을 쓰는가에 따라 행동(業因)이 변하고, 그에 따른 결과(業果)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옛 성인들은 한결같이 먼저 자신에게 엄격했다고 한다. 천태원법사는 스스로를 경책(自戒)하는 글에서 “욕심의 불길은 공덕의 숲을 태운다.(欲火燒殘功德林)”며 탐욕을 경계했으며, 설두명각선사는 유문(壁間遺文)에서 “시기를 관찰해 나아가고 머무름에 스스로 욕됨이 없도록 하라.(觀時進止無自辱也)”며 경거망동을 주의했다. 자신을 다스리는 말씀이 어디 이 두 분의 말씀뿐이겠는가 마는, 그 어떤 것이라도 인용하는 <열반경>의 글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사랑하는 마음(慈心)을 닦는 자는 능히 탐욕을 끊고, 가엽게 여기는 마음(悲心)을 닦는 자는 능히 성냄(瞋?)을 참고, 기뻐하는 마음(喜心)을 닦는 자는 능히 괴로움((不樂)을 다스리고, 집착을 끊는 마음((捨心)을 닦는 자는 능히 탐욕과 화를 멈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