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일보 종교인 칼럼 2007년 8월20일> 범수스님 -병을 부르는 열 가지 이유-
“여래께서 세상에 나신 까닭은 불행에 빠져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을 구하기 위함이니, 누구든지 가난한 자, 고독한 자, 병든 자, 노인 등을 공양하면, 그 복이 무한해서 소원대로 이루어지리라.”고 한 뒤, 간병의 방법을 말하고 있다. “병을 간호하는 사람은 첫째 환자가 먹어도 좋은 음식과 먹어서는 안 될 음식을 알아야 한다. 둘째 병자의 대소변과 침이나 토한 오물을 싫어하지 말아야 한다. 셋째 가엾게 여기는 마음으로 대가를 요구하지 않아야 한다. 넷째 탕약을 잘 다스려야 한다. 다섯째 병자를 위해 설법함으로써 기쁘게 해줘야 한다.”
 몸을 가진 이상 생로병사에서 벗어 날 수 없으므로 병으로 인한 고통을 당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몸이 불편할 때는 바짝 긴장하다가도 조금만 호전되면 금방 무관심 해버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사실 건강할 때는 몸을 망치는 짓만 골라하다가 탈이 나면, 그때부터 부랴부랴 건강을 챙기려고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을까 한다.
 흔히들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자신의 건강을 위해 노력하지만, 때론 역행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약인지 독인지 모르고 좋다하면, 무엇이든지 일단 먹고 보자는 보신주의자들과 남들이 하면 무조건 따라하는 무소신주의자들을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그들은 "건강을 위해 그러는데, 무슨 참견이냐."고 하지만, 음식뿐만 아니라 옷 등 모든 것이 자신과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서로 빛나는 것이다. 마치 맛난 음식일지라도 금식을 요할 때는 독이 되는 경우를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한편 "환경이고 뭐고 경제만 잘 돌아가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자리를 함께 한 적이 있다. 자연과 생명체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사실을 환기시키기 위해 "삶의 터전인 환경도 잘 가꿔야 하지 않을까요." 하자, 오로지 '경제'라고 한다. 경제 역시 삶의 일부분으로써 환경의 토대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으로 환경을 떠난 경제란 있을 수 없다. 육체의 건강뿐 아니라 정신건강까지 챙겨야 하는 이유이다. 그러면 건강의 주체이기도 한 신체를 불교에서는 어떻게 볼까. 먼저 육신을 이루는 물질을 지수화풍(地水火風)의 사대(四大)로 말한다. 그리고 신체를 내부의 사대로 자연을 외부의 사대로 구분하여 인간과 자연을 상의성(相依性)의 관점에서 살핀다. 우주와 자신을 거시적인 관점에서 하나의 생명체로 보는 것인데, 현대 자연과학에서도 신체적 요소와 자연 물질을 같은 범주에서 살피기는 매 한가지이다. 그러므로 내외부의 사대가 원만히 조화를 이룰 때 별 탈이 없지만, 성질을 달리하여 서로 침해하는 까닭에 병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각각의 사대는 또 일 백 일병씩을 가짐으로 모두 합치면, 사 백 사병이 된다. 즉 우리는 병의 요인을 항상 지니고 있으므로 몸과 마음이 맑지 못하면(不淨) 병마(病魔)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다. 또한 건강의 장애인 병은 단순히 물질요소에서만 비롯되는 것만이 아니라, 각자의 마음가짐에 따른 생활습관에서도 기인한다. 그 가운데 병을 부르는 열 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오래 앉아 눕지 않는 것, 둘째 음식에 절제가 없는 것, 셋째 근심 걱정이 심한 것, 넷째 너무 피로한 것, 다섯째 마음껏 음탕하게 노는 것, 여섯째 화를 자주 내는 것, 일곱째 대변을 오래 참는 것, 여덟째 소변을 길게 참는 것, 아홉째 상풍(上風 재채기 하품 등)을 무조건 억제하는 것, 열째 억지로 하풍(下風 방귀)을 참는 것. 이 열 가지 인연으로부터 병이 생기거니와 아홉 가지 인연만 있으면, 수명이 다하지 않았더라도 그 때문에 횡사하게 된다.”
 태어날 때의 몸 그대로 살고 싶은 것이 모두의 바램이겠지만, 어디 그게 쉬운 일인가. 하지만 병이 생겼다고 무조건 두려워하거나 고통 속에서 떨기 보다는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마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나니, 병고로써 양약을 삼으라."는 성자의 가르침을 되새겨 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