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일보 종교인 칼럼 2007년 9월 10일> 범수스님 - 고무신-

 한껏 멋을 부린 선남선녀들의 옷차림은 한 여름의 햇빛마냥 눈부시다. 젊은 그 자체가 멋이며 낭만인 듯 무엇을 입든 걸치든 생동감이 넘쳐 보인다. 때로는 아찔할 정도의 노출 때문에 시선 두기가 어렵지만, 대체로 무난한 것 같다. 여름의 특성을 이해한다면 말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게 정열을 내뿜던 계절도 끝자락에 선 듯하다. 연일 이어지던 비가 그친 뒤 풀밭 사이로 풀벌레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멋쟁이들은 벌써 가을 차림을 준비하면서 신발장 속의 구두도 손 볼 테지만, 수행자들의 신발형태는 한결 같다. 여름이면 고무신, 겨울이면 털신을 신으니 말이다.
 신발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겠지만 '고무신을 거꾸로 신었다.'는 것처럼 자주 회자되는 말도 드물 것이다. 행여 그런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변심'을 나타내는 이 말을 따르면 실재이든 아니든 연인관계에선 고무신을 한번 씩 신어 본 것이 된다. 이처럼 우리 삶과 깊숙이 연관되어 있지만, 신고 다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요즘은 시골 장에서조차 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칼라 고무신과 같은 형태로 변화하며 나름대로 변신을 꾀하지만, 호시절은 지난 듯하다.
 공동생활을 하는 절에서는 늦봄과 늦가을 두 차례 신발을 단체로 구입한다. 형태가 똑같기 때문에 크기별로 나누는데, 댓돌 위에 검정털신 아니면 하얀 고무신 일색인 이유이다. 모양새가 같다 보니 때론 타인의 것을 신기도 하는데,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 나름대로 표시를 해둔다. 신발코 부분에 구멍 뚫거나 기호 또는 이름 끝 자나 무좀 이라고 쓰기도 하며,  어떤 것은 반창고를 붙인 것도 있다. 단순 간결한 일상 속에서 미소 짓게 하는 것 중 하나이다. 얼마 전 대화 중에 “신을 오래 신지 못한다.”는 한 스님의 말이 발단이 되어 고무신에도 '명품(名品)'이 있다는 이야기로 확대된 적이 있었다. 문제의 고무신은 몸체와 밑창을 접착제로 붙여 만든 것인데, 신발 바닥이 노란 색인 것이 특징이다. 파는 사람의 말에 따르면 “밑바닥이 생고무라서 오래 신을 수 있다.”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발을 덮어 보호하는 면과 밑창을 접착제로 붙여 만들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틈이 생기고 그 사이에 물이 고인다. 그래서 이런 신을 신고 걸을 때면, 질퍽거리며 이상한 소리가 나고 또 양말마저 젖기 일쑤다. 그러므로 신발을 씻은 다음 반드시 물기를 빼내야 하는 불편마저 따른다. 이것을 ‘하품(下品)’이라고 한다면, 명품은 전체가 하나로 된 통 고무신이다. 신발자체에 연결된 부분이 없기 때문에 어디에도 물이 고이지 않는다. 대충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한바탕 웃었다.  
 사찰에서의 생활은 개인 살림살이가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 공용으로 쓴다. 개인 물품이라고 해봤자 모두 걸망(또는 바랑, 등에 지고 다니는 자루 같은 큰 주머니)에 들어갈 만큼 단출하다. 이것을 '고무신 뒤집어 놓는다.' 고 말하기도 하는데, 비 올 때 신발이 젖지 않도록 고무신만 뒤집어 놓아도 될 만큼 생활이 간소하다는 뜻이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그냥 웃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말의 무게를 알 것 같기도 하다. 단순히 그리고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인 고무신 뒤집기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한편 고무신의 장점 가운데 하나는 아무리 더러워도 씻으면, 금방 본래의 색이 드러나는 것이다. 때묻은 고무신을 씻는 것같이 욕심을 털어버린다면 본래의 청정한 그 마음이 드러나지 않을까. 그럴러면 고무신 뒤집듯이 어리석음도 뒤집어야 하지 않을까. 요즘 간간이 들려오는 일련의 안타깝고도 부끄러운 작태를 보면서 마음에 상처를 받았을 분과 함께 ‘초심’, ‘고무신’ 같은 말을 떠 올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