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일보 종교인 칼럼 2007년 7월 9일> 범수스님 -화합은 ‘네 탓’이 아닌 ‘내 탓’-
 
 새 신발을 머리맡에 두고서는 쳐다보고 또 매만지느라 잠을 설쳤던 적이 있다. 그런데 오랜 만에 같은 경험을 했다. 얼마 전부터 시작한 조기축구때문에 새로 축구화를 산 것이다. 신발 끈을 매면서 날씨를 걱정하던 모습이 꼭 어릴 적 그 느낌이었다. 그런데 하필 그 날 따라 피치 못할 사정으로 밤을 지새워야 했다. 다음 날 아침 “잠깐 동안이라도 잠을 자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며 짧은 고민을 하다가, 결국 새 축구화를 신고 싶어 운동장으로 나갔다. 보호 장구를 갖춘 뒤 뽐내듯 열심히 뛰었지만, 왜 그렇게도 실수연발이던지 내내 “새로 샀는데...”만 되 뇌였다.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어른들이 깡통을 골대 삼아 뛰는 모습을 보면 아이들의 골목 축구가 연상되겠지만, 마음만은 K-리그 열정이 부럽지 않다. 그리고 정식게임 못지 않은 운동량도 양이거니와 개개인의 실력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어느 정도 준비가 필요하다. 그래서 처음 운동장에 나오면 골대를 지키며 적응시간을 거치는데 필자도 그랬다. 몸과 마음이 따로 움직이니 당연한 것이다. 거기에다 헛발질에 넘어지기까지 하면 속된말로 졸지에 ‘개발(공을 아무렇게나 차는 것)’이 되고 만다. 그나마 필자는 변명의 여지가 있다. 우스개 소리로 “고기도 못 먹지... 체력이 딸려서...” 라고 하면, 다들 건강한 웃음을 터뜨리곤 한다.
 경기를 해봤으면 알겠지만 공을 두고 상대와 다투다보면 몸이 부딪히기도 하고, 또 같은 편끼리 주고 받다보면 엉뚱한 곳으로 차기도 한다. 이때 자신의 실수라고 얼른 인정해 버리면 별로 문제될 게 없지만, 책임을 전가한다면 좋은 경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알다시피 단체 경기는 팀웍(teamwork) 즉 화합이 중요하다. 역할을 나눠 전체가 함께 노력해야 되기 때문에 누가 잘하고 못하는가 하는 지엽적인 문제보다는 전체가 얼마나 함께 노력하는가 하는 근본적인 것이 더 중요하다. 다들 이런 사실을 잘 알면서도 막상 경기를 하다보면 ‘내 탓’보다는 ‘네 탓’이라고 하는 경우가 더 많다. 만약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자신만 빼고 모두 잘못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결국 모두가 잘못하는 것이 되고 만다.
 단체 운동의 결과는 선수 개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가 함께 받아 들여야 하는 공동책임이다. 그래서 서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굳건한 협력관계가 유지돼야 하겠지만, 만약 서로 반목하고 불신하는 경우라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 끝은 자명(自明)할 것이다. 불경인 <경률이상>에 보면 단체의 화합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나타내는 이야기가 있다.
 사자의 젖을 마셔야만 나을 수 있는 병에 걸린 왕이 “사자의 젖을 구해오는 사람에게 땅과 막내공주를 주겠다.”고했다. 그러자 한 사냥꾼이 자신이 그것을 하겠다며, 양 한 마리와 포도주 한 통을 구해 사자 굴 속에 넣어뒀다. 때마침 먹이 감을 구하러 갔다가 허탕을 치고 돌아온 사자가 이것을 보고는 한 잎에 삼켜버렸는데, 그만 술에 취해 잠들고 말았다. 이때를 틈타 사냥꾼은 얼른 사자의 젖을 짜서 돌아 왔다. 그러자 이 때부터 사냥꾼의 신체기관들이  서로 공을 다투었는데, 먼저 발이 말했다. “사자 젖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내 덕이야. 발이 없으면 어떻게 산에 올라갔겠어.” 이번에는 손이 자랑했다. “손이 있으니까 젖을 짰지.” 그러자 다른 기관들도 저마다 자신의 공을 다투었다. 이를 지켜보던 혀가 말했다. “다투지 마. 너희를 죽이고 살리는 것은 모두 나에게 달렸어.” 그래도 다툼은 끝나지 않았다. 이튿날 사냥꾼은 사자의 젖을 가지고 왕에게 갔다. 그때까지도 발, 손, 눈, 귀 등이 서로 공을 다투며 상대를 헐뜯자 혀는 짜증을 내며 이렇게 생각했다. “정말 시끄럽게 다투는군. 어디 두고 봐.” 그 때 왕이 사자의 젖인가를 확인하며 사냥꾼에게 묻자, 혀가 불쑥 말을 내뱉었다. “나귀의 젖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