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일보 종교인 칼럼 2007년 6월 18일> 범수스님 -풀 한 포기의 단상-

 “대구의 대기 오염도가 다른 대도시보다 상대적으로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지나간 신문 기사를 접하고는 고개를 돌려 창문 너머의 산을 바라봤다. 작년까지는 골이 깊은 산에서 지냈으므로 ‘공해’에 대해 별로 신경 쓸 일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대구 가운데서도 대기오염도가 심한 곳에 있다보니 산사가 그리울 때가 많다. 그래서인지 “옥상에다 어떤 식으로 정원을 꾸미지” 하며 머릿속으로 설계도를 몇 장씩 그리곤 하는데, 그날도 그런 즐거운 상상을 하며 걷다가 옥상 한 구석에 버려진 듯 자라는 잡초를 발견했다. 순간 측은한 마음도 들었지만, 끈질긴 생명력에 경의로움을 느꼈다. 보기에는 초라한 잡초 같지만, 한 포기의 풀이 자라는데도 온 우주가 동참하므로 우주는 마치 거대한 하나의 생명체와 같다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지난 일을 떠올렸다.
  몇 년 전 이른 봄이었다. 도량(道場) 내의 묵은 밭에다 “뭘 심어 볼까.”라는 가당찮은 생각을 하다가 감자를 심었다. 농사에 대해 아는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뭔가를 ‘심어야 한다.’는 신념까지 보탰으니, 몸이 온전한 곳이 없을 지경이었다. 해보지도 않고 미리 알음알이로 계산해서 스스로 포기하는 것을 경계하는데다, 일찍이 공자께서 역부족을 걱정해 중간에 그만두는 것을 ‘획(畵)’이라고 했으니, 이미 시작한 일을 그만 둘 수도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심을 줄만 알았지 가꿀 줄은 모른다는 것이었다. 막상 온갖 폼을 다 잡았지만, 씨알을 굵게 하기 위해 꽃을 따주는 것도 몰랐으니, 완전 무대포(無大砲) 그 자체였다. 그래도 하지(夏至)에 이르러서는 신도들과 함께 감자를 캐게 됐는데, 농담조로 “이거 농협에 전화해서 트럭 몇 대 불러야 하는 것 아닙니까.” 하자 같이 일하던 어느 신도분이 “감자야 고맙다.”고 하지 않는가. 말의 뜻인즉 “말만 농사꾼인 손에서 이렇게나마 커준 것이 고맙다.”는 것이었다. 그 순간 모두 박장대소하며 굵은 땀방울을 흘렸다.
 수행자와 농사와의 관계는 ‘일하지 않으면 먹지 말라.(一日不作 一日不食)’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단순히 소득만을 위한 노동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수행을 게을리 할까봐 경계하는 말로써 본분에 충실해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자연의 이치인 인연(緣起)관계를 살핌으로써 수행에 도움을 삼고자 하는 뜻까지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농작물을 관리하는 것은 농사꾼이 아니라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일이 힘들어서라기보다 서툴러서도 그렇고 수확하려면 참을 줄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말을 달리 표현하면 세상의 모든 존재나 현상은 독립적으로 존재하거나 저절로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작용한다. 그래서 ‘우주공간의 모든 존재들은 시절인연(時節因緣)에 따라 변해 갈 수 밖에 없다.’고 하는 것인데, 그 과정 속에 있는 우리 역시 우주의 여러 현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므로 삶이란 결코 우리가 정해 놓은 관념적이고 기계적인 숫자에 따라 바뀌는 것이 아니라, 주변상황과의 관계 속에서 설정되는 것이다. 한편 이러한 사실을 농사를 지으며 알아간다는 것은 고단한 일인지 모른다. 하기야 바닷물을 다 마셔봐야 짜다는 것을 아는 것은 아니지만, 명석하지 못하기에 수고로움을 감수해서라도 우주와 함께하는 자신을 알아 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혹자는 이런 이야기를 거대담론쯤으로 치부할지도 모르겠지만, 허공을 향해 두 팔 벌리듯 가끔 시야를 폭넓게 가져 보는 것은 어떨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