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일보 종교인 칼럼 2007년 4월 16일 > 범수스님 -좋은 습관은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 -
 
 불교에서는 행복한 삶을 돕기 위해 ‘좋은 습관’ 등으로 풀이하는 계(戒)를 두고 있다. 계란 ‘경계한다.’ ‘조심한다.’ 등의 의미로써 나쁜 행위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살생하지 말라(不殺生 생명을 존중하라), 훔치지 말라(不偸盜 아낌없이 베풀어라), 사음하지 말라(不邪淫 청정한 행위를 하라), 거짓말하지 말라(不妄語 진실을 말하라), 술 마시지 말라(不飮酒 깨끗한 생각을 지켜라)’의 다섯 가지는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권하는 보편적인 규범이다. 그것은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이라서 더욱 그렇다. 만약 외딴 곳에서 혼자 산다면 누구에게 거짓말을 하고, 어떤 이의 노력을 훔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계는 개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주위와 함께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공동의 노력이다. 즉 서로에 대한 배려이며, 사회구성원으로서의 믿음이자 실천이다. 이런 사실을 알면서 고통의 늪에 빠져드는 것은 감정과 욕망도 한 요인이 될 것이다.
 작은 이익을 위해 뒤에 올 결과를 생각지 않고 행동하는 것을 흔히 ‘어리석다’고 한다. 이는 현상이나 사물의 이치를 살피기보다는 감정에 따라 움직이고, 이기적인 욕심을 부리며, 금방 들킬 거짓말 등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좋은 습관인 계를 지키지 못했다고 죄인 취급하거나 심하게 자학한다면, 또 다른 문제를 야기 시킬 뿐이다. 간혹 타인의 잘못에 저주를 퍼붓거나, 자신의 실수에 대해 심한 자책을 하기도 하는데, 문제 해결의 올바른 방법이 아니다.
자신의 행위가 잘못인지 조차 모르는 사람은 아무런 가책 없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겠지만, 죄를 지으면 나와 남이 동시에 아픔을 겪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행동을 조심한다. 그러므로 자기가 지은 것을 자신이 되돌려 받는다는 자업자득(自業自得)의 진리를 알아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신념을 지키며 꾸준히 좋은 행동을 할 때 그곳에서 행복이 싹트는 것이다. 따라서 좋은 습관인 계를 지킨다는 것은 행복의 세계로 가는 길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간단치 않다. 날이 갈수록 범죄는 더욱 흉악해지고 사람들은 저 마다의 고통으로 신음한다. 그렇다보니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현실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려 무리수를 두곤 한다. 그중에 하나가 음주일 것이다.
 애주가들은 술을 주백약지장(酒百藥之長)이라 찬미하곤 한다. 백 가지 약 중에 술이 최고라는 뜻으로 마음에 병이 있으니 술로 다스린다고 한다. 그리고 놀고먹어도 술만큼은 마셔야 한다며, 주천지미록(酒天之美祿)을 든다. 즉 술은 하늘이 주는 훌륭한 녹봉(祿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술과 밥을 넣는 포대라는 뜻인 주낭반대(酒囊飯袋)도 알아야 한다. 먹고 마실 줄만 아는 무능한 자를 욕하는 말이다. 이렇듯 술과 관련된 많은 말들이 있지만, 술 자체를 두고 좋고 나쁘다는 식의 이분법적인 평가는 곤란하다.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약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조심해서 다루지 않으면 작은 즐거움을 위해 마시는 것이 도리어 큰 고통을 불러들이는 화근이 되고 만다.
주국(酒國 술에 취해 느끼는 별천지)에서 전하는 슬픈 이야기 한 가지. 주붕(酒朋 술친구)들이 주력(酒力 술의 힘)을 자랑하기 위해 주전(酒戰 술 많이 마시기 내기)을 자주 벌이면, 아내들은 안타까움에 몸서리치다 슬픈 마음으로 보험 하나 더 든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