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일보 종교인 칼럼 2007년 3월 26일> 범수스님-참회란 스스로 하는 것 -

 마음이란 묘한 것이라서 좋은 일을 도모할 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있다. 경험해봤으면 알겠지만, 자신의 잘못된 행위에 대한 때늦은 후회는 말 그대로 '후회막급'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부끄러움을 느낌과 동시에 인과법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를 알면서도 유독 자신의 옳지 못한 행위에 따른 결과만큼은 회피하고 싶은 것이다. 그것은 중생심이라서 그렇지 않을까 한다. 하지만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나라”는 말처럼 외면이나 회피 또는 전가하는 것으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마치 물체에 그림자가 따르듯 문제의 중심에 자기가 있기 때문에 ‘결자해지’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참회라는 방법을 두어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스스로 소멸하도록 돕고 있다.
 참회란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하는 행위이다. 그러나 처벌위주가 아니기에 공덕을 쌓아 죄를 소멸토록 하고 있다. 물론 엄중한 법도 있지만, 자발적인 뉘우침을 전제로 하는 오회(五悔)를 보면 그 의미가 분명해질 것이다.
자신을 살펴 바른 행위를 하도록 이끌고, 그에 따른 이로움을 타인에게 돌리도록 하는 다섯 가지의 참회 방법인 오회는 다음과 같다. 먼저 죄를 뉘우치고 좋은 행위를 하는 참회(懺悔), 성인에게 법문을 청해 타인도 들을 수 있도록 하는 권청(勸請), 다른 사람의 공덕을 보고 함께 기뻐하는 수희(隨喜), 자신이 쌓은 공덕을 타인에게 돌리는 회향(回向), 한결 같은 마음으로 실천하는 발원(發願)이 있다. 이것은 자신을 정화시키려는 자세로써 잘못에 대해 뉘우치고 그 근본원인을 알아 반복하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이와 관련한 재미있는 일화가 불경인 <잡보장경>에 있다.
 옛날 어떤 왕이 이웃나라와 전쟁을 벌여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그 땅을 정복했다. 그러나 왕은 전쟁의 참상을 보고 난 뒤 ‘죽어서 반드시 지옥에 떨어지리라’ 생각하고는 자신의 잘못을 크게 뉘우쳤다. 그래서 스님에게 청정한 계율(좋은 습관)을 받아 지녔다. 왕의 이런 모습을 본 여러 신하들이 수군거렸다. “이미 무수한 인명을 살상했는데, 이제 와서 좋은 일을 한들 무슨 소용인가.” 신하들의 수군거림을 들은 왕은 그들에게 엄히 명했다. “너희들은 지금부터 7일 동안 커다란 솥에 물을 끓이라.” 7일 후, 왕은 끓는 가마솥에다 반지 하나를 던져 넣고는 다시 명했다. “이제 끊는 물 속에 있는 반지를 꺼내오너라.” 신하들이 외쳤다. “차라리 죽이려거든 다른 방법으로 죽여주십시오. 어찌 펄펄 끓는 물 속에 있는 반지를 꺼낼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반지를 꺼낼 수 있겠느냐?” 그러자 신하들이 “불을 끄고 찬물을 넣어 물을 식힌 다음에 꺼내야 합니다”라 했다. 이에 왕은 “그렇다. 내가 과거에 지은 죄는 뜨거운 가마솥의 끓는 물과 같다. 하지만 더 이상 불을 때지 않고 찬물을 부으면 뜨거운 가마솥을 식힐 수 있듯이, 내가 지금부터 참회를 하고 다시는 나쁜 짓을 하지 않으면 어찌 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하겠느냐”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신하들은 고개를 조아리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군가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참회하고자 할 때 빈정거리거나 약점을 잡아 괴롭힌다면, 그 역시 언젠가 크게 뉘우칠 날이 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