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죽공양의 공덕

[불교신문 2872호/ 12월12일]  기획연재: 산사에서 온 편지 - 마산 광산사 주지 범수스님

 신라시대 자장율사께서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경북의 어느 산사에서 늙은 개 한 마리와 살 때였다. 사찰 내에 건물이라고는 절을 하고 일어서면 머리가 천장에 닿고 지붕에 새가 둥지를 튼 한 평짜리 대웅전과 있는 듯 없는 듯한 산신각, 그리고 요사와 해우소가 전부였다. 처음 그곳에 갔을 때 사람은 없었고 편지 한 장과 개 한 마리뿐이었다. 그렇게 개인적으로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소중한 생활이 시작되었다. 법회는 1년 동안 단 네 번 행해졌으며 그나마 오시는 분들 가운데 60대가 젊은 층이었는데, 그런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 해 동지불공 때였다.
 전례에 따라 전날 저녁에 절에 오신 불자님들이 손수 농사 지으신 팥을 씻고 불려서 불을 지피려고 하는데, 제대로 된 공양실이 없어 한데에 솥을 걸은 뒤 장작을 나르고 물을 길어드렸다. 그러면서 처음 뵙는 분과 인사를 나누고 저녁예불을 모셨다. 늦은 저녁 혹시 ‘바람에 불씨는 날리지 않는지?’ ‘뭐 필요로 하신 것은 없는지?’ 몰라 찬바람을 피하며 걸음을 옮겼다. 처마 끝 외등 불빛에 희미하게 보이는 가마솥은 어렸을 적 봤던 증기기관차처럼 연신 김을 내 뿜었으나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순간 화재의 위험이 염려되어 다가갔을 때 솥 뒤에 왜소하신 보살님이 굽은 등을 하고 앉아계셨다. 바람결 따라 움직이는 장작불에 언뜻언뜻 비치는 그분의 얼굴은 따뜻한 불기운만큼이나 온화하셨지만 농사일로 굵고 거칠어진 손을 보는 순간 미안함이 앞섰다. 그래서 도와 드리려고 하는데, 저만치에 있는 요사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 따라 웃음과 말소리도 함께 흘렀다. 내심 ‘아무리 오랜만에 만나 반가운 마음에 담소를 나눈다지만, 연세 드신 분 혼자 팥죽을 끓이게 하고 자기네들끼리 따뜻한 방이라니…’ <열반경>에 화합하고 게으르지 말라는 것이 어찌 출가자한테만 해당되는 말이겠는가?
 단체는 화합을 개인은 정진으로써 덕목을 삼아 법회 등에 동참(同參)하는 것이니 곧 함께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줄 요량으로 성큼성큼 걸어가 방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면서 엄동설한의 매서운 바람과 함께 나타난 스님을 본 보살님들은 엉거주춤 서로를 의지하며 힘겹게 일어나 앉으셨다. 그 모습을 보고서 말을 꺼내기 어려웠지만, “연세 드신 분 혼자 한데서 일하시는데 도와드리지 않고 다들 여기에 계시면 어떻게 합니까?” 하자 서로 “밖에 누가 있는데?” 하며 문을 열어 살피기 시작하였다. 몇 안 되는 분들이 “누구 아니가?” 하면서 한 말씩 거드는 동안 그분들끼리의 언어로 서로를 확인하고서 너무나 당연한 것을 가지고 스님이 괜히 그런다는 것처럼 ‘어느 댁’이라 하였다. 그러자 다들 별일 아니라는 듯 힘없는 손을 뻗어 가마솥을 가리키며 “스님 그이가 제일 젊어요.” 하고선 따뜻한 방바닥을 향한 아쉬운 눈길을 보내셨다. 뒤에 안 사실이지만 굽은 허리로 각자 소임을 다하고 잠시 쉬고 계셨던 것이다. 그런 사실을 몰랐던 필자는 전후 사정을 알고 난 뒤 문을 닫아 드리고 나오는데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흔들리면서 칼바람소리를 냈다. 그 소리에 그동안 지내왔던 사찰과 너무도 다른 환경에 대하여 다시 생각할 즈음 벌레가 제 집 마냥 드나드는 한옥에서 예의 귀신바람 소리까지 더하였다.
 다음 날 새벽 부처님께 팥죽을 올리고 정성스럽게 발원하는 동안 다리가 불편하신 보살님들은 모두 자리에 앉아 합장으로 절을 대신하셨다. 그렇게 불자님들의 정성과 염원을 부처님 전에 오롯이 남기고 떠나신 후 팥죽 공양을 하며 ‘내 덕행으로 받기 부끄럽네(村己德行全缺應供)’ 라는 오관게(五觀偈)를 천천히 되짚어봤다.
 몸이 불편하신 분들께서 품앗이하듯 서로 도와가며 그 추위에 팥죽을 끓인 것은 보살의 마음이 아니라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꼭 그와 같지 않더라도 사찰에서의 공양(식사)은 누군가의 공덕이 담긴 것이므로 맛을 가지고 탓하거나 양을 두고 불평을 하기보다 ‘도업을 이루고자 이 음식을 받는다(爲成道業膺受此食)’는 의미를 살피는 것이 불자로서의 자세이다. 그렇다면 시주 쌀 한 톨의 무게가 일곱 근에 이른다는 일미칠근(一米七斤)의 말이 이해되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