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없는 마음이 신심

[불교신문 2864호/ 11월14일자]  기획연재: 산사에서 온 편지 - 마산 광산사 주지 범수스님

 혹독한 추위가 마음마저 얼어붙게 하던 지난 겨울이었다. 아마 저녁 무렵이었던 것으로 기억 하는데, 왜소한 체격의 오십대 초반처럼 보이는 거사님 한 분이 사무실(원주실)로 들어섰다. 직장을 마친 뒤 곧바로 방문한 것인지 작업복 차림이었다. 그렇게 처음 만나 인사를 하고 같이 차를 마시며 사찰을 방문한 용건을 묻자 머뭇거리면서 천천히 말을 하였다. “스님! 사실은 저한테 돈이 조금 생겼는데 어디에 쓸까? 생각하다가 절에 시주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왔습니다. 그런데 액수가 적습니다”고 하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의 순수한 신심(信心)에 감사하는 마음과 함께 언젠가 하소연 하듯 ‘관세음보살님’에 대하여 묻던 거사님이 떠올랐다.
 영천 은해사에 있었을 때이다. 일요일 군부대 법회에 가지 않는 날이면 지역의 조기축구 회원들과 함께 공을 찼다. 절에서 학교 운동장까지 걷기엔 조금 멀고 해서 스쿠터를 타고 다녔는데 잔고장이 있어 근처 수리점을 찾았다.
 주인이 스쿠터 한 번 쳐다보고 필자 한 번 쳐다보기를 몇 번 반복하더니 아무 말 없이 스쿠터를 만지작거렸다. 증상이 어떻다고 설명하지 않았는데도 대뜸 고장 난 부위를 찾아내어선 고치기 시작하였다. 그의 실력에 믿음을 가지고 수리하는 동안 옆에 앉아서 물끄러미 쳐다보는데 무뚝뚝하던 그가 갑자기 “스님! 어른들께서 종종 관세음보살이라고 되뇌시는데 무슨 뜻입니까?”라 물었다.
 묵묵히 일하던 가운데, 불쑥 건넨 말 속엔 “삶이 왜 이렇게 고단합니까?” 라는 하소연이 담겨있는 듯 하였다. 그래서 곧바로 답하지 않고 그냥 웃기만 하였는데, 재차 “스님”이라고 부르며 답을 재촉하는 듯하였다. 그제야 “예, 관세음보살님은…”이라고 막상 운을 떼었지만, 말끝을 흐려 버렸다. 그리고는 교학적인 설명보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항상 관세음보살님이라고 해보세요, 그러면 무슨 뜻인지 저절로 알게 될 것입니다”라며 그의 삶에 불보살님의 가피가 함께 하기를 기원하였다.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거사님! 삼보(三寶)에 복을 지으려는 것은 좋은 일로써 시주물의 많고 적음은 아무런 문제 될게 없습니다” 하며 우선 그의 뜻을 존중한 뒤 “보통은 공돈이 생기면 자신이나 가족을 위해 쓰려고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어디 요긴한데 쓰지 않으시고 이렇게 시주하실 생각을 하셨습니까?”하자 겸연쩍게 웃으며 말을 아꼈다. 그래서 속으로 “무슨 사연이 있겠지”하며 거듭 고마움을 표하고서 힘들어 보이는 그의 어깨 뒤에서 행복을 기원 드렸다. 그리고서는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어느 날 그 분이 다시 방문하였다. 처음에는 몰라보았지만 이야기 도중 그 때 그 분인 줄 알게 되었다. 반가운 마음에 그동안의 안부를 물으며 이야기하다가 그 때 시주하게 된 사연을 듣게 되었다. 물론 이번에도 같은 이유로 절을 방문한 것이라고 하였다.
 거사님의 말에 따르면 옛날 자신의 집안이 너무 가난해서 끼니를 잇기 힘들었다고 한다. 가난으로 몸서리치던 증조부께서 세상을 원망하기보다는 “복을 짓지 않아서 이렇게 사는 것이다”고 확신하고서는 신심을 가지고 적든 많든 절에 시주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녹록치 않은 삶이었지만 원(願)을 성취하기 위해 간절히 복을 짓기 시작하자 좋은 일이 생기더니만, 한 대를 지나서는 집안의 곳간이 넉넉해졌다고 한다. 자연히 삶이 윤택해지고 덩달아 자손도 번창하여 말 그대로 소원 성취하였다. 여기서 신심(信心)이란 의심(疑心)이 없는 것으로 깨끗한 마음이다. 즉 부처님의 가르침인 인과법에 의심치 않았기에 어려운 환경에서도 확신을 가지고 꾸준히 복을 지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삼대에 이르러서 공덕주(功德主)의 간절함은 넉넉함에 퇴색되고 시주하던 즐거움은 낭비의 향락으로 바뀌자 집안이 다시 기울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받아쓰던 복(得福)에 탐닉해서 더 이상 복(作福)을 짓지 않아 복이 다한 것이다(福盡). 그래서 아버지 대에 이르러서는 다시 끼니를 걱정할 만큼 어려워지자 자신이라도 복을 지어야겠다는 생각에 절에 시주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