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삭발하다

[불교신문 2805호/ 4월4일]  기획연재: 산사에서 온 편지 - 마산 광산사 주지 범수스님

 언젠가 지인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들어가는 입구는 여느 아파트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내부는 가정집 같지 않게 그 흔한 TV도 하나 없어 단출한 분위기였다. 대게는 집을 꾸민다고 이것저것 늘어놓아 산만한 느낌인데, 그 집은 마치 사찰같이 텅 빈 충만히 가득했다. 화선지와 같은 집에 점찍듯이 앉아 창밖을 내다보는데 베란다에 놓인 화분 몇 개가 눈에 띄었다. 어떤 것은 힘이 뻗치는 대로 멋대로 자랐고, 또 어떤 것은 사람의 야무진 손길이 필요한 것처럼 부실하게 보였다. 그래서 집주인에게 화분을 손 봐 주겠다고 동의를 구한 뒤 전지가위로 가지와 잎을 손길 가는 대로 삭둑삭둑 시원하게 잘라냈다. 그렇게 한참을 정리하다 보니 나무의 모습이 흡사 초하룻날 삭발한 스님들 같았다. 내심 깔끔하게 바뀐 모습을 보고 흡족했으나 화분을 본 집주인은 잠시 머뭇거리다 “스님, 애를 절에 보내려고 그럽니까.”라고 했다. 그 순간 서로를 쳐다보며 소리 내어 웃었다. 그의 말 속에 여러 의미가 섞여 있겠지만 “스님처럼 만들려고 그러는 건가요.”라는 뜻이 강했을 것이다.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면 추구하는 행복도 다를 뿐만 아니라 자연히 그에 따른 사고나 행동도 달라진다. 지금 그 일을 돌이켜보면 그것에 대한 지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집주인은 미용실에서 머리카락을 보기 좋게 다듬듯이 나무도 멋지게 다듬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스님은 나무마저 스님이 추구하는 가치관대로 깎았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즉 ‘나무마저 삭발시켜버렸다.’는 우회적인 표현이 아니었을까 한다.
 삭발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삭발에는 단순히 머리카락을 깎는 그 이상의 의미로 단절과 화합의 의미를 함께 담고 있다. 먼저, 삭발의 의미를 단절이라고 했을 때는 교만이나 유혹 그리고 치장(虛飾) 등을 여의기 위한 것으로 번뇌의 씨앗인 굴절된 욕망을 끊는다는 것이다. 출가자는 자연히 세속적인 행복 보다 출세간의 행복을 추구하여 출가(出家)하였으므로 그 본연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결혼하지 않는다. 다르게 말하면 사랑, 결혼, 욕망 등 일반적으로 추구되는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속의 행복과 출가의 행복을 각각 다른 것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삭발을 화합의 의미로 보면, 화합이란 출가자의 모임인 승가(僧伽)의 일원이 되는 것으로 비유하면 한 방울의 물이 바다와 합쳐져 한 맛(一味)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평등한 입장에서 동일한 생활의 덕목과 노력을 경주하여 그 이상(理想)을 집적체득하고 나눈다. 이런 과정에 참여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바로 출가이며 삭발의식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길 위에 서 있는 사람을 출가자 또는 스님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갑자기 삭발에 대해 장황하게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은 며칠 전 뜻밖의 곳으로부터 생각지도 않은 사진 한 장을 우편으로 받았기 때문이다. 편지 봉투 속의 빛바랜 사진은 오랜 행자 시절을 마치고 사미계를 받은 뒤 은사스님(스승님)과 함께 찍은 것이었다. 마치 어른이 되어 잊고 있던 백일 사진을 우연찮게 보게 된 것처럼 수계식(득도의식) 사진을 접하고서는 감회에 젖어 따스한 봄볕이 드는 마루 한 쪽 벽에 편안하게 기대어 앉았다. 그리고 천천히 차를 우려내며 무척이나 은사스님의 속을 썩이던 지난 시절을 떠 올렸다. “모든 것이 위태롭기만 하던 제자에게 아무런 말씀은 없으셨지만, 오랫동안 자애롭게 지켜봐 주시며 기다려주신 은사스님의 심정은 어떠하셨을까” 라는 생각에 이르러서는 가사장삼을 수호(착의)하고 법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지난 시절 출가하러 절에 가던 초심으로 돌아가 부처님 전에 향을 피워 올린 뒤 은사스님에 대한 감사와 참회의 절을 올렸다. 일 배 일 배가 더해질수록 스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이 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