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과인가 운명인가

[불교신문 2815호/ 5월9일]  기획연재: 산사에서 온 편지 - 마산 광산사 주지 범수스님

 한때 알고 지냈던 어느 불자님이 “스님! 부처님 명호를 따라 읽으면서 일 배 일 배 절을 하는데 한자는 다르지만 스님의 법명과 같은 부처님 명호(名號)가 나와서 그 부처님께만 절을 두 번 했습니다.” 라고 하였다. 그 말을 듣고서 빙긋이 웃었지만, 그때 가졌던 심정을 딱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중생심’이다. 달리 말하면 <천수경>의 무위심내기비심(無爲心內起悲心 평등의 자비)이 아니라 좋고 싫은 것을 자기중심적으로 판단해서 좋은 것은 가지려고 집착하고 싫은 것은 버리려고 집작하는 분별심이다. 이 두 가지 모두 뜻대로 되지 않을 때 괴로움이 따른다. 이 같은 분별심은 일상적으로 누구나 내는 것이지만, 그 근원은 자신만을 애지중지하는 아애(我癡, 我見, 我慢, 我愛) 등이 중심이다. 이것은 자기 위주의 성향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은 무조건 옳은 것인 반면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조건 잘못됐다는 식이다. 그러므로 그에 따른 고통이 수반되지만 자신에게서 일어나는 불행 등의 원인을 본인의 행위에 따른 인과관계에서 찾으려 하기보다는 외부에 돌리려고 하는 우를 범하기 쉽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중생의 번뇌는 인연이 있는 것이다.”고 하셨다. 어떻게 보면 간단한 것 같은 이 한마디의 말 속에 참 다운 진리가 담겨 있다. 번뇌 즉 고통이 인연(緣生)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면 그 원인을 찾아 제거함으로써 고통 역시 사라진다는 이야기다. 마치 병의 증세에 따라 원인을 찾아 치료하면 완쾌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겪는 일을 ‘인과법칙’이 아닌 ‘우연’이나 ‘운명’ 그리고 ‘숙명’ 등으로 받아들이는 불자들도 있다. 그리고 각각의 개념에 대해 혼동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예를 들면 ‘그 사람과의 인연은 우연히 이뤄졌지만 마치 숙명과도 같은 운명이었다.’와 같이 말하는 경우이다. 그렇다면 먼저 그 각각의 개념을 간단히 살펴보자.
우연(偶然)이란 아무런 인과 관계 없이 뜻하지 않게 일어나는 것이다.

숙명(宿命)이란 인생이나 세상의 모든 것은 선천적으로 결정되어 있어서 초월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운명(運命)이란 이 세상 모든 것이 초인간적인 위력에 의하여 조성되고 지배되는 것이다.
인연(因緣)이란 조건으로 말미암아 발생하는 것이다.

이런 전제 조건에서 각 항목에다 서로 대비되는 ‘행복, 불행’ 등의 말을 넣어보자.

우연(偶然): 행복(불행)은 아무런 인과 관계 없이 뜻하지 않게 일어난다.
숙명(宿命): 행복(불행)은 선천적으로 결정되어 있어서 초월할 수 없다.
운명(運命): 행복(불행)은 초인간적인 위력에 의하여 조성되고 지배된다.
인연(因緣): 행복(불행)은 조건으로 말미암아 발생한다.

 그래서 고통이나 불행을 우연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에이 재수가 없어서...” 그리고 숙명으로 여기면 “아이고 내 팔자야...” 또한 운명으로 받아들이면 “오! 믿습니다.”라며 허구적인 존재에 매달리지만 인연으로 헤아리면 “인과응보구나.” 할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가치관을 가졌는가에 따라 문제를 받아들이는 입장과 해결방법 역시 달라진다. 예를 들어 고통이나 괴로움에 대해 각각의 입장에서 본다면  

우연(偶然): 이리저리 피하려는 요령만 익힐 것이다.
숙명(宿命): 체념할 것이다.
운명(運命): 허구의 존재에 매달려서 구원만을 탄원할 것이다.
인연(因緣): 원인을 파악해서 스스로 벗어나려 노력할 것이다.

 이번 달은 부처님 탄생 일이 있다. 지금쯤 많은 분이 정성스럽게 연등을 만들고 또 어떤 분은 사찰을 찾아 부처님의 탄생을 함께 기뻐하며 각자의 염원을 담은 등도 달 것이다. 그때 마음속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담은 지혜의 등도 하나씩 컸으면 어떨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