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인흉내

[불교신문 2789호/ 2월8일] 기획연재: 산사에서 온 편지 - 마산 광산사 주지 범수스님

절에 가끔 오시는 거사님과 함께 차를 마시다가 “여건이 되시면 자주 오셔서 기도도 하고 그러시죠”라고 했더니, “마음이 부처”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 말을 듣고 난 뒤 짚이는 곳이 있어서 빙긋이 웃으며 “자신의 성품을 보아서 깨달으신 분의 생각과 행동은 그와 같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해도 되겠지만, 만약 욕망으로 가득차서 어리석게 생각하고 말하며 행동하는 중생이 그렇게 말만 하는 것이라면 좀 그렇지 않을까요?” 하였더니,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내심으로는 믿음에 이은 행동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싶었으나,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 어색한 분위기를 마무리하기 위해 찻잔을 거둬 씻는 동안, 귀동냥으로 들은 몇 줄의 글로 도인 흉내를 내다가 금방 탄로 난 지난 시절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나왔다.
 강원을 막 졸업하고 사형 스님이 주지소임을 맡고 있던 절에 있을 때였다. ‘이제 비구계도 받았으니 억지로라도 마음은 ‘평상심(平常心是道)’으로 기준(宗)을 삼고, 행동은 정중(牛步虎視)하게 하며, 매사는 한결같이(一心)하여, 경거망동하지 않아야지’ 하며 스스로를 단속하였다. 특히 법회가 있는 날은 이런 생각을 더욱더 다잡았는데, 그 날도 법당에서 신도님과 함께 기도를 했다. 정근이 한참일 때 허리가 심하게 굽은 어느 노보살님께서 한 손은 불단에 의지한 채 나머지 손으로 불이 붙어있는 초에다 향을 갖다 대다가 그만 촛대를 넘어뜨렸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떨어진 초가 복전함으로 굴러 들어가 버렸다. 요즘의 복전함은 윗부분에 작은 구멍만 내지만, 예전의 것은 손이 들어 갈 만큼 틈이 넓어서 떨어진 초가 불이 붙은 채로 들어간 것이다. 이런 일련의 상황을 다 보았지만, 기도는 오로지 일심으로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애써 모른 체하며 정근을 계속하였다. 그렇게 흔들림 없이 기도하는 척하는데, 조금 지나자 초가 떨어진 복전 함에서 연기가 그물거리며 종이 타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순간 화재에 대한 긴장감이 엄습하였으나, “곧 저절로 꺼지겠지”라는 생각에 애꿎은 목탁만 더욱 세게 쳐댔다. 그러나 바람과 달리 시간이 지날수록 연기가 심해졌다. 억지 도인 노릇한다고 부동의 자세로, 입으로는 정근을 하고 손으로는 목탁을 쳤지만, 마음속으로는 ‘신도들은 왜 불을 안 끄지?’ 라는 등의 생각과 얽히고설켜 마음이 산란해졌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 짧은 순간에 <백유경>의 여러 어리석은 자들의 비유가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그러다 불을 끌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러서야 치던 목탁을 멈추고 허둥대며 큰소리로 “불 안 끄나요”라고 하였더니, 그때부터 신도들도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그렇게 기도하다가 불붙은 초가 복전함에 떨어져 화재로 이어질 뻔한 아찔한 순간이 끝나고 나서야, 신도님께 “연기가 나면 얼른 불을 끄셔야죠, 왜 안 끄셨어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저희들이야 스님께서 움직이지 않으시니 움직이면 안 되는 줄 알았죠”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듣고서 <서장>의 “한 소경이 여러 소경을 이끌고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간다”라는 구절이 생각나 매우 부끄러웠다. 원문에서 말하는 주제와는 달라도 표현은 빌려 써도 될 만큼 어리석은 짓을 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마음이 곧 부처다(卽心是佛)’라는 말은 한 점 의심의 여지가 없으나, 자신의 마음을 가리켜 스스로 부처라고 말할 수 있다면, 행동과 말과 생각도 그와 같아야 하지 않을까. 당신이 부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