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하면 왜 교만해지나

[불교신문 2781호/ 1월1일] 기획연재: 산사에서 온 편지 - 마산 광산사 주지 범수스님

‘범유하심자 만복자귀의(凡有下心者 萬福自歸依)’라는 말이 있다. ‘겸손(하심)하면 온갖 복이 저절로 굴러들어온다’는 내용이다. 경쟁하며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이 말이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글이다. 이와 관련해서 떠오르는 지난 시절 이야기 하나를 끄집어내어 본다. 설악산의 어느 유명 사찰에 잠깐 머무르고 있을 때였다. 요즘같이 모든 것이 꽁꽁 얼어버릴 만큼 한파가 매서웠다. 그 정도를 경전의 구절을 빌어 표현한다면 추위로 고통 받는 여덟 지옥인 팔한지옥(八寒地獄) 가운데서도 오로지 ‘호호’하는 신음 소리만 낸다는 호호파(虎虎婆) 지옥일 것이다. 그래서 가급적 대중이 모여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방 밖으로 나가는 것을 극도로 자제하였고, 행여 칼바람이 문틈으로 비집고 들어올까봐 문풍지를 이중 삼중으로 바르며 지냈다. 그렇게 외부환경과 씨름하던 어느 날, 공양시간에 문득 낯선 거사님 두 분이 눈에 띄었다. 속으로 ‘언제부터 계셨지?’ 하며, 원주 스님께 물었더니 “두 분 모두 어디라고 하면 다 알만한 대학교의 교수로 며칠 전에 절에 왔다”고 하였다. 그 중 한 분인 A대 교수로, 1년 가운데 9개월은 가정에 헌신하였으니 남은 기간은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다며 가족의 양해를 구한 뒤 절에 머무는 것이라 하였다. 그 말을 듣고 분명하게 말하기 어려웠지만 여하튼 수긍이 가서 한 번 더 쳐다보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해우소를 청소하는 그 교수님을 보았다. ‘대학 교수가 화장실 청소라’라고 생각하며, 누군가에게 물었더니, ‘공짜 밥은 영험이 없다’며 시키지도 않은 일을 스스로 찾아서 하는 것이라 했다. 신분을 앞세워 사찰에서 편하게 지내려고 할 수도 있었을텐데 자신을 스스로 낮추었기 때문에, 만 가지는 아니더라도 떡이랑 과일 같은 복이 저절로 들어갔다. 또 한 사람은 B대 교수로 A대 교수와 정반대였다. 출가자와 재가자들이 함께하는 공양실 안에서도 절묘하게 중간쯤 자리를 잡고서 스스로 대우받으려고 하였다. 그런 모습이 내심 못마땅했지만, 그 분의 인격이려니 하며 그냥 지나치다, 그 도가 점점 심해지던 어느 날 도반 스님과 눈이 마주쳤다. 그래서 공양을 마칠 즈음, 도반 스님이 “교수님, 스님들이 산에 살다보니 세상물정만 모르는 것이 아니라 학문도 짧아서 그러니 영어 좀 가르쳐 주실 수 있습니까?”라며 의도적으로 접근하였다. 그러자 “스님들도 영어를 배우셔야죠”하며 신난듯 말하였다. 도반 스님과 미리 말을 맞추지는 않았지만, 눈빛만으로도 뜻이 통하였던 것은 B대 교수라는 아만을 조금 건드려줄 필요성을 공감하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여튼 둘은 얼른 방에 와서는 원효스님이 쓰신 것을 영어와 한문으로 묶어 한 권으로 출간된 책을 꺼내 놓고서 웃음을 참아가며 기다렸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밖이 시끄러웠다. 묻지도 않는데 만나는 사람에게 “스님들께 영어 가르쳐 주러 간다”고 큰 소리로 떠들며 방에 들어서는 교수님께 도반 스님이 먼저 영어로 된 텍스트를 읽고서 문법이 아닌 내용을 물었다. 어쩌면 be동사쯤 가르쳐 주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었을 B대 교수님의 표정이 일순간 굳어졌다. 그러는 사이 같은 내용을 이번에는 한문 원전으로 읽고서 마찬가지로 내용을 물었더니, 교수님은 헛기침과 함께 책을 들어 눈에 가까이 댔다 멀리 하기를 반복하였다. 그리고서는 “제가 안경을 안 가져와서”라며, 안경을 가지러 간다던 B대 교수님을 그 뒤로 절에서는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복이란 자기가 지어 스스로 돌려받는 것이니 우리 모두 새해에도 복 많이 지으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