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일보 종교인 칼럼 2007년 12월 28일> 범수스님 -달팽이 뿔 -

 사찰에서는 대체로 음력 14일과 29일 또는 6자가 들어간 날 정해진 시간과 순서에 따라 삭발과 목욕을 한다. 그러므로 한 달에 두 번 내지 세 번을 하게 되는데, 이를 두고 ‘삭발목욕일’이라 한다. 애니메이션에서 머리카락이 없으면 힘을 못 쓰는 머털도사처럼 삭발과 목욕을 하고 나면 물에 젖은 솜처럼 몸이 무겁다. 그래서 흔히 하는 말로 ‘골 메꾼다.’고 찰밥과 김 그리고 두부전골 같은 특식을 먹는다. 그렇게 겉과 속을 각각 바꾸는 삭발목욕날이 기다려지기도 한다.
 불교에서 목욕이란 단순히 육체의 청결뿐 만 아니라, 단체의 화합과 마음의 때를 벗기는 의식이다. 그리고 삭발은 세속적 욕망과 인연을 끊는다는 단절과 부정의 표현이지만, 그 이면에는 성스러운 의식과 행위를 영위한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일상적인 목욕과 이발 역시 위생뿐 아니라, 의례적인 요소도 강한데 <잡아함경>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목욕을 하면 죄가 씻겨진다.”고 믿는 이에게 부처님께서는 “죄업을 없애기 위해서는 청정한 행위(持戒)를 해야지, 목욕을 한다고 깨끗해 지는 것은 아니다.”며, “깨끗하게 살고자 한다면, 몸과 마음을 청정하게 하라.”고 하셨다. 즉 죄를 숨긴다고 그 업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니, 선한 마음으로 공덕을 쌓음으로써 죄를 짓지 말라는 뜻이다. 그러나 법대로 규칙대로만 살 수 없다고 항변하는 세상에서 자신의 실수나 잘못을 손쉽게 세탁하고픈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특히 상황이 반전되어 지난날 저질렀던 잘못이 자신의 발목을 잡는 꼴이라면 더더욱 간절할 것이다. 마침 사회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일도 있고 하니 목욕탕에서 벌어졌던 에피소드 한 토막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
 그 날도 보통 때와 같이 몸을 씻은 뒤 거울 앞으로 갔다. 여느 목욕탕처럼 플라스틱으로 된 목욕의자에 앉아 면도를 한 뒤 일어서려는 순간 엉덩이에 뭐라고 표현하기 힘든 통증이 왔다. 얼마나 아프든지 아프다는 말조차 못하고 짧은 신음소리만 겨우 냈다. 이유도 모른 채 앉을 수도 없고 설 수도 없는 기마자세로 고통을 참느라 몸에 힘을 잔뜩 줬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온갖 억측을 다 했지만, 고통만 더할 뿐이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 벌어지기 전에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려 할 때, 엉덩이에 의자가 찰싹 달라붙어 있는 것을 거울을 통해 보게 됐다. 순간 아픈 것도 잊어 버린 채 피식 웃고 말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문제의 의자가 겉으론 멀쩡했지만, 금이 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 사실을 모르니 그냥 그 위에 앉았던 것이다. 그런데 필자의 몸무게가 더해지자, 금 간 곳이 벌어져 틈이 생기고, 살의 신축성 때문에 틈 사이로 살이 밀려들어 갔다가 일어설 때 벌어진 틈이 다시 메꿔짐과 동시에 그 사이에 살이 끼여 버렸던 것이다. 결국 다시 주저 앉음으로써 문제는 해결됐다. 그 뒤로는 수건을 깔고 앉는 버릇이 생겼다. 하여튼 웃음은 조금 뒤로 하고 여기서 억지를 부려 목욕의자를 '자리'에 비유하려 한다. 물론 물체가 있거나 그것을 둘 수 있는 공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감투나 지위 등을 말한다.
 불교에서는 수행자들에게 지위, 명예, 권세 등과 같은 세속적인 것을 닭 벼슬, 또는 와각(蝸角 달팽이 뿔)과 같이 부질없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것은 몸과 마음이 세인과 달리 수행자라면(心形異俗) 추구하는 것도 달라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탐욕을 부리는 것은 수행자에게 부끄러운 일이며, 출가자가 부자가 되는 것 역시 군자에게 비웃음을 사는 것(道人貪 是行者羞恥 出家富 是君子所笑)”이라며 경계한다. 이상은 '소임'이 아닌 '자리'에 대한 필자의 견해와 같은데, 이젠 그 비웃어 줄 군자마저 사라져 가는 것 같다. 요즘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된다는 의식이 사회 저변으로 급격히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