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를 믿는 것과 아는 것

[불교신문 2849호/ 9월19일자] 기획연재: 산사에서 온 편지 - 마산 광산사 주지 범수스님

 몇 년 전 소임 때문에 미얀마(Myanmar)로 성지순례를 갔다가 현지인보다 더 현지인 같은 외모의 한국인 가이드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미얀마 말을 잘하는 한국인 같기도 하고 한 편으론 한국말을 잘하는 미얀마 사람 같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의 말이나 행동은 마치 승가의 일원인 것처럼 자연스러워 동행하기에 아무런 스스럼이 없었다. 특히 차분한 어조와 깊이 있는 말은 책을 봤거나 누군가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로는 하기 어려운 부분까지 넘나들었다. 그런 그의 안내로 성지순례를 하던 중 어느 날 그의 출가생활에 대해 듣게 되었다.
 그는 중학생 때 부모님과 상의 끝에 미얀마 현지의 승단에 출가했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된 미얀마에서의 출가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것은 오후 불식(금식)이었다는 말을 듣는 순간 피식 웃음이 나왔다. “부지런한 자는 오후 불식하지만, 게으른 이는 오전 불식한다”는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한창 성장기에 수행자의 길을 걷던 그는 한국에 와서 군복무를 마친 뒤 다시 남방으로 돌아가 출가생활을 계속했다고 한다. 그러다 흔히 숙연(宿緣)이라 일컫는 인연(因緣)을 현지에서 만나게 되면서 오랜 동안 고민했다고 한다.
 출가수행 도중 다시 세속으로 나가는 것(還戒)이 죄악도 아니고 숨길 일도 아니기에 그 인연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하고 한국에 계신 어머니께 그런 사정을 말씀드렸다고 한다. 그러자 어머니께서는 무슨 날벼락 맞은 듯 놀라며 단호히 반대하셨다. 하지만, 계속해서 이어지는 아들의 간절한 애원을 차마 뿌리치지 못하시고 “왜 하필이면 외국인 며느리냐”며 반쯤 동의를 하셨다고 한다. 이번에는 용기를 내어 아버지께 말씀을 드리자 어머니보다 더 완강하게 말리시면서 처음에는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안 된다”고 하셨지만, 서로 애끓는 우여곡절 끝에 “결혼하더라도 자식만은 낳지 말라”는 말씀으로 분명치 않은 허락을 하셨다고 한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서 아내가 임신을 하자 아들은 멀리 남방에서 그 소식을 부모님께 전하였고, 부모님은 축복을 하면서도 “그래 낳더라도 하나만 낳아라”고 하셨다고 한다. 여기서 잠깐 그의 부모님께서 하신 말씀을 나름대로 억측한다면, “아들이 수행자의 길을 중단한 것이 못내 아쉬웠던 부모는 아들이 다시 수행자로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을 여전히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막상 아내가 출산하고 보니 쌍둥이였고, 기쁜 마음에 부모님께 그 소식을 전하자 그의 아버지께서는 침묵하시다가 “너와 나는 금생에 수행자가 될 인연이 없는가 보다. 그러나 다음 생에는 반드시 수행자가 되어서 다시 만나자”고 하셨다고 한다.
 평범하지 않았던 그의 이야기를 직접 들으면서 ‘장애(難)’와 ‘발원(願)’이라는 말을 떠올려보았다. 몇 년 전 모 방송국의 다큐멘터리 ‘차마고도-순례의 길(오체투지로 Tibet의 Lasa까지 약 2000km를 순례하던 과정)’에서 순례자들의 순수하고 간절한 원을 조용히 지켜보던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지만, 여하튼 어떤 소원이든지 쉽게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원(願)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일 것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믿는다’는 것만으로 자신의 소원이 성취되기를 바라며 노력하지 않고 기다리고만 있지는 않는지 스스로 점검해 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그와의 대화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었다. “미얀마 사람들의 신행생활은 어떤 것 같습니까?”라는 물음에 “그들은 불교를 믿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아는 것 같습니다”하였다. 그 짤막한 대답의 이면에는 믿음은 공덕의 원천이지만, 믿는 것에 그치지 않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직접 실천하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겨져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