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으면 미로요
놓으면 길이다
버리려고 찾는가
찾으려고 버리는가
찾고 버리는 것이 아니라네
그냥 그대로 두면 될 것을.

-梵水-
執着卽迷路
放下卽是道
爲捨而覓之
爲着而捨之
此非求非捨
但逍遙於道

범수 스님 : 장마철에 고무신만 툇마루 끝에 거꾸로 뒤집어 놓아도 아무런 걱정이 없을 만큼 단출한 살림살이의 비구 스님입니다. 현재 웹진 〈월간 좋은인연〉과 북 클럽을 운영 중입니다.

사랑 방정식

 Hand Drip방식으로 커피 원두를 갈은 가루를 Dripper에 붓고 물을 내리면, 맑은 거품이 방울방울 터지면서 진한 향기를 뿜어냅니다. 그리고 Drip Pot에 커피 액이 한 방울씩 맺혀 떨어지는 것을 볼 때가 커피를 직접 뽑아 마시는 즐거움 중 하나입니다. 거기에다 Pablo de Sarasat(1844~1908)나 Camille Saint Saëns(1835~1921)의 음악을 곁들인다면 분명 호사일 것입니다. 그렇게 잠깐 동안 오후의 가을 햇살과 함께 분에 넘치는 혼자만의 즐거움에 푹 빠져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원고청탁이었습니다. 특별히 잘하는 것이 없는 것이 특기인데, 원고청탁이라…. 그것도 주제가 ‘사랑’이라고 합니다. 짧지만 책임이 뒤따르는 통화를 한 뒤, 잠깐 동안 숨겨 놓았던 보물 상자를 꺼내 그 속을 확인하듯 사랑과 관련 있을 만한 기억을 더듬어 봤습니다. 상자 안의 구슬을 하나씩 살피듯 이리저리 추억을 떠올려 보았지만 딱히 손에 잡히는 구슬을 집기 어려웠습니다. 속으로 “그게 그것이었을까.” 하는 반문만 하면서 말입니다.
 출가해서 처음 접하는 불교 전적이 세 분 스님이 쓴 글을 한 권으로 묶어 만든 <초발심자경문>입니다. 그 가운데 보조국사 지눌 스님의 <계초심학입문>에 ‘재물과 이성과의 사랑은 독사의 독보다 더 위험하니 조심하라.(財色之禍 甚於毒蛇)’ 하였으며, 원효 성사의 <발심수행장>에는 ‘모름지기 수행자는 애정을 품지 않아야 하고, 세속을 그리워하지 말아야 한다.(離心中愛 是名沙門 不戀世俗 是名出家)’라고 했습니다. 야운 스님의 <자경문>에서는 ‘몸을 망치는 것에는 애욕보다 심한 것이 없으며, 구도심을 망각하는 것에는 재물보다 더한 것이 없다.(害身之機 無過女色 喪道之本 莫及貨財)’며 여타의 스님들과 마찬가지로 이성과의 사랑에 대해 각별히 경계하는 말씀을 남기고 있습니다. 어디 그 뿐인가요. ‘만약 수행자가 이성과 사랑에 빠진다면, 그것은 마치 세속 법에서 사형에 처하는 중죄처럼 부처님 법에서도 중죄이다.(佛法中, 卽猶如死罪, 稱爲斷頭罪)’라며, 자비문중(慈悲門中)에서 ‘목을 자르는 것과 같다.’는 섬뜩한 표현까지 쓰고 있습니다.  
 사정이 이러한데 감불생심 사랑에 대해서 몰래 꿈이라도 꿀 수 있겠습니까. 설사 알아도 몰라야 하고 모르면 더더욱 관심을 끊어야 하는 것이 수행자의 입장인데, 사랑에 대한 견해를 말해 달라니 난감해질 수밖에요. 도대체 해 봤어야 알지 싶습니다. 주위 분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다들 웃습니다. 그것도 실실 웃습니다. 그 모양새를 보아하니 자기들은 사랑에 대해서 뭔가 알기는 아는 눈치 같습니다. 그런데 상대가 스님이라서 그런지 차마 대 놓고 말은 못하고 대신 다른 말로 피해 갑니다. “스님 사랑에도 종류가 있습니다. 에로스와 아가페적인 사랑으로 나눌 수 있는데, 아마 아가페적인 사랑을 이야기하지 않았을까요.”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속으로 뿐만 아니라 겉으로도 소리 내어 웃었습니다.
 사랑을 나누더라도 그것을 드러내 놓고 말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게 일반적인 모습인가 봅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사랑이라는 말에 대한 반응입니다. 남성은 대체로 그냥 미소만 짓고, 여성은 얼굴 붉히면서도 조리에 맞지 않는 말을 많이 하는 것을 보면, 마치 사랑이 여성 전용물 같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한쪽에서만 하는 사랑은 아닐 텐데 반응은 대조적입니다.
 영화 <Shakespeare in Lov>의 줄거리에서 보면, 젊은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촉망받는 극작가로서 대중의 기대를 한 몸에 받지만, 정작 자신은 극심한 슬럼프에 빠져 고민합니다. 그러다 점성가로부터 ‘사랑만이 천재성을 되살릴 것’이라는 점괘를 받고 새로운 사랑을 찾는다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영화의 각본가인 Marc Norman는 “작가 자신이 실제로 애타는 사랑에 빠져 본 경험 없었다면, 창조되기 어려운 작품이었을 것이다.”고 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록 비극적인 사랑이라서 슬프지만 가슴 떨리는 애틋한 사랑을 한 번만 해 봤으면 하는 바람을 가질 것 같습니다. 그것은 어렵고 힘들수록 고귀하고 아름다운 사랑이라는 신념을 가진 사람에게는 더더욱 그럴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가시나무새> 같은 책이 많이 읽히고 사랑과 관련된 노래가 많이 불리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어느 가수의 노래 제목은 아예 ‘총 맞은 것처럼’입니다.
 스님에게는 이런 감동적인 문학작품이나 예술작품보다는 아난(阿難) 스님을 짝사랑한 마등가 여인(摩登伽女)의 이야기와 한 여름 밤의 꿈 같은 사랑이야기인 <조신의 꿈> 이야기가 더 현실감 있게 다가옵니다. 전자는 수행자를 사랑한 여인의 이야기이고 후자는 여인을 사랑한 수행자의 이야기입니다.
 먼저 〈마등가경〉은 아난 스님을 유혹한 마등가의 딸 발길제(鉢吉帝)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이른 아침 걸식을 하며 걷고 있는 아난 스님을 본 발길제는 당당하고 의젓한 스님의 용모와 음성에 반해 속으로 남편으로 삼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자신의 뜻을 털어놓으며 도움을 청하자 처음엔 반대하더니 상사병으로 시름시름 앓는 딸을 보고 마음을 바꿉니다. 결국 모녀가 손발을 맞춰 스님의 자비심을 이용해 자기 집에 감금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 일이 성공하자 발길제는 기쁜 마음에 들떠 곱게 치장하고서 자신의 소원을 들어 줄 것을 스님에게 간절히 애원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사이 아난 스님은 다른 스님의 도움으로 그곳을 빠져 나와 부처님 계신 곳으로 무사히 되돌아왔습니다.
 스님을 연모하던 그녀는 부끄러움도 잊은 채 스님의 뒤를 따라 부처님 계신 곳까지 갔습니다. 이때 부처님께서는 그간의 사정을 다 아시면서도 짐짓 여인에게 “아난의 어디가 좋으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여인은 망설임 없이 “스님의 눈, 코, 입, 목소리, 몸매, 걸음걸이 등 어디 한 곳도 좋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며 순순히 사랑에 빠진 것을 고백했습니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사람의 몸이란 눈에는 눈물, 코에는 콧물, 입에는 침, 귀에는 귀 딱지, 몸뚱이에는 대, 소변이 담겨 있는 한때의 가죽 주머니에 불과하다.”며 여러 비유를 들어가며 무상의 가르침을 펴셨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던 발길제는 문득 미혹한 마음이 밝아져 그 길로 출가했습니다.
 <삼국유사>에 일장춘몽 같은 조신(調信)의 꿈 이야기가 있습니다. 강원도 명주 땅에 서라벌  세달사의 장사(莊舍 사찰에 딸린 농장)가 있었는데, 그곳 관리인 조신 스님은 약관을 갓 넘긴 상태였습니다. 어느 날 낙산사 관세음보살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던 중 그곳 태수의 딸을 처음 보고서 그만 숨이 막히고 정신이 아득해졌습니다. 마음을 가다듬어 다시 염불 정진을 하려 해도 가슴만 뛸 뿐 마음의 평정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먼발치에서나마 낭자를 몰래 훔쳐보는 것이 더 큰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시간이 흘러 낭자는 기도를 마치고 떠났습니다. 그날 이후로 침식을 잊을 만큼 사모의 정에 빠진 조신은 관세음보살님에게 낭자와 혼인할 수 있도록 남몰래 간곡히 빌었습니다.
“관세음보살님 출가한 신분으로 욕심을 냈으므로 다음 생에 축생으로 태어나더라도 금생에 꼭 태수의 딸과 연분을 맺고 싶습니다. 소원을 이루게 해 주옵소서. 나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그렇게 애태우며 기도하는 가운데 무심한 세월만 흔적 없이 흘러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낭자가 혼인을 약속한 한 청년과 함께 낙산사 부처님께 참배하러 온 것을 본 순간 회색빛 승복을 잊어버릴 만큼 가슴이 터질 것 같았습니다. 조신은 그날 해가 저물도록 관세음보살님 앞에서 “단 하루만이라도 좋으니 낭자와 좋은 인연을 맺어 달라.”며 간절히 발원하면서 한편으로 자신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은 관세음보살님을 원망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낭자를 그리워하다 그만 지쳐 깜빡 잠이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인기척을 느껴 주위를 둘러보니 언제 왔는지 애타게 그리던 낭자가 바로 옆에 다소곳이 앉아 있었습니다.
조신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습니다. 낭자는 “스님. 기도에 방해가 될 줄 아오나 스님을 얼핏 뵙고 나서부터 마음속으로 사랑하며 잠시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부모님의 명을 거역할 수 없어 다른 사람을 따랐지만 지금은 죽어서도 스님과 한 무덤에 묻힐 각오로 이렇게 왔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들은 조신은 “사모의 정으로 말한다면 저도 다를 바 없습니다.”면서 속으로 연신 관세음보살님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제 소원을 이렇게 들어주셔서….”를 되뇌며 낭자의 손을 이끌고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해 산길로 바쁘게 걸음을 옮겼습니다.
 부부의 금술이 좋아 자녀 다섯을 두었으나, 세간살이는 곤궁하기 짝이 없어 나물죽으로도 끼니를 잇기 어려운 형편이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뒤에서 잡고 앞에서 끌듯이 사방으로 동냥을 다녔습니다. 그렇게 유랑생활을 하다 보니 옷은 헤지고 달아서 몸뚱이조차 가리기 어려운 몰골이 되었습니다.
명주의 해현령이라는 고개를 넘다가 열다섯 살 된 큰 아이가 굶어 죽자 부부는 서로를 끌어안고 통곡하며 자식을 길가에 묻었습니다. 그리고는 남은 네 자녀를 거느리고 우곡현이라는 곳에 이르러 띠풀로 엮은 집에서 살았습니다. 부부가 병들어 늙고 굶주리기까지 하자, 열 살짜리 딸아이가 밥을 얻으러 이 고을 저 마을로 다녔습니다. 그러다 그만 개에 물려 부모 앞에 누워서 고통을 호소하니 부부도 목이 메어 흐느끼며 눈물만 줄줄 흘렸습니다.
 부인이 괴로워하다 눈물을 훔치고 나서 잠시 머뭇거린 뒤 말하기를, “제가 처음 당신과 만났을 때는 얼굴도 곱고 나이도 젊었으며, 의복도 깨끗했습니다. 맛있는 음식이 한 가지라도 생기면 당신과 나눠 먹었고, 천이 생기면 당신과 나누어 옷을 지어 입으면서 뭐든지 함께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정은 더할 수 없이 두터워졌고, 사랑은 깊어졌으니 참으로 지중한 인연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근래에 들어 몸이 쇠약해져 날이 갈수록 병은 깊어지고 굶주림과 추위는 해가 갈수록 더욱 심합니다. 그리고 처마 살이나 한 잔의 마실 물도 구하기 어려우니, 수많은 집 문 앞에서 당하는 수모를 이제는 견디기 힘듭니다. 아이들이 추위에 떨고 굶주려도 돌봐 주지 못하는데, 어느 틈에 부부간의 정을 생각할 여유가 있겠습니까. 젊은 얼굴에 고운 웃음은 풀잎 위의 아침이슬 같고, 지란 같은 백년가약은 바람 앞의 촛불 같습니다. 당신은 제가 있어서 더 짐이 되고, 저는 당신이 있어 더욱 근심이 됩니다. 옛날의 즐거움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것은 다름 아닌 우환으로 접어드는 지름길이었습니다. 당신과 제가 어찌해서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렀는지 모르겠지만, 여러 마리의 새가 함께 굶어 죽는 것은, 짝 잃은 새가 혼자 우는 것보다 못한 일인 것 같습니다. 어려울 때 버리고, 좋을 때 가까이하는 것은 인정상 차마 할 도리는 아니지만, 그렇게 하고 안 하고는 원하는 대로 다 되는 것이 아니며, 헤어지고 만나는 것도 모두 인연에 달렸으니, 지금부터 헤어지기로 합시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조신은 슬펐지만, 순순히 아내의 말에 따르기로 했습니다. 각각 아이 둘씩 데리고 이별의 눈물을 떨구며 잡았던 손을 놓는 순간 조신은 꿈을 깼습니다. 그때까지 불단에는 켜 놓았던 촛불이 꺼질 듯 말 듯 가물거리고 있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 보니 하룻밤 사이에 수염과 머리털은 하얗게 셌고, 세상살이의 고단함과 쓰라림은 마치 백년을 겪은 것 같았습니다. 그로 인해 불꽃같은 세상에 대한 미련이 없어졌으며, 집착하던 마음도 얼음 녹듯 깨끗이 사라졌습니다.
 두 이야기에서 보듯 사정이 이러한데 수행자가 굳이 사랑하는 마음을 내려고 하겠습니까. 하긴 여우 같으면 그럴 지도 모르겠습니다. 예로부터 사랑을 달콤함에 비유하지 않았습니까. 여우를 잡을 때 그런 달콤한 꿀을 이용한다고 하는데, 그것은 여우가 꿀을 매우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독약을 넣은 먹이에 꿀을 발라서 길목에다 두면, 냄새에 이끌려 여우가 나타나나 금세 그 속에 독이 들은 것을 알고서 그냥 되돌아간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저만치 가서는 미련이 남았는지 돌아 서서 고민하기를 “에이, 쳐다만 볼 뿐인데 괜찮겠지.” 그러다 되돌아와서는 “냄새만 맡으면 안전하겠지.” 하며 코를 킁킁거리다 “맛만 보는데 죽기야 하겠는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살짝 꿀을 핥아먹고서는 그만 달콤함에 정신이 혼미해져 “에라이, 모르겠다. 죽을 때 죽더라도 일단 먹고 보자.” 한답니다. 생활의 특성상 간접체험이 많은 수행자가 여우가 간 길을 따르려고 할 때 딱 어울릴 것은 직언은 “바닷물을 다 마셔봐야 짠 줄 아냐”입니다.
 이번 기회에 ‘나에게도 사랑이 있었을까.’ 하는 정리 차원에서 개인사를 더듬어 봤습니다.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사실대로 말하기 곤란하겠지만, 혼자 미소 짓거나 지그시 눈 감을 만한 그런 사랑의 종자를 찾기 어려웠습니다. 이 점을 수행자로서 자긍심을 가져야 할까요, 아니면 누군가의 말처럼 사랑도 한 번 못해 본 재미없는 삶으로 치부해야 할까요?
 성서에서 사랑을 이야기하듯 다른 종교에서도 사랑을 말하지만 그렇다고 직접적으로 사랑이라고 표현하지 않습니다. 유교에서는 사랑을 인(仁)이라고 하고 불교에선 자비(慈悲)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불교에서 사랑을  터부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실체에 대한 본질적인 탐구를 합니다. 즉 문제를 회피하기보다는 본질을 파악하면 자유로워 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사랑이란 어떤 대상에 탐하고 사모해서 집착하는 것(貪戀執著於一切事物)이지만 그 본질은 믿음.(<俱舍論> 愛謂愛樂, 體卽是信; 不染汚之愛, 其體是信)이라고 합니다. 또한 사랑은 증오를 낳는데(愛可生愛, 亦可生憎; 憎能生愛, 亦能生憎), 비유하면 사랑과 증오는 손바닥과 손등 같아서 하나이며, 사랑이 깊으면 깊을수록 증오와 원망 또한 깊어진다(恰若手心手背, 爲一體之兩面, 愛之愈深, 則憎怨之可能愈大)고 했습니다.
<법구경>에 보면 “사랑은 근심을 낳고 두려움을 일으킨다. 만약 사랑을 떠나면 근심과 두려움 역시 사라진다.(從愛生憂患, 從愛生怖畏; 離愛無憂患, 何處有怖畏)”했습니다. 실제로 연인의 관계가 아니더라도 대인관계에서 누군가를 좋은 감정으로 대해봤다면, 사랑하면 왜 근심(得)과 두려움(失)이 생기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 같습니다.
 다양한 사랑에 대해 살펴보면 먼저 ‘애(愛)’란 혈연 친족관계에서 느끼는 정이고(自己有親族血緣關係之情愛), 친애(親愛)란, 타인과의 우정(他人之友情)이며 욕락(欲樂)은 특정 인물에 대한 애정입니다(某一特定人物之愛情). 그리고 애욕(愛欲)은 연인 관계(性關係之情愛)이며, 갈애(渴愛)란 대상에 대한 강렬한 집착(執著以致於癡病之愛情)입니다. 한편 <대비파사론>에서는, 사랑을 두 가지로 나누어 색깔 있는 사랑은 탐(貪)이라 하고, 투명한 것은 믿음(信)이라 했습니다. 그렇다면 수행자의 사랑 방식인 자비(慈悲)란 무엇일까요? 먼저 자(慈)란 중생을 자애롭게 여겨 평화롭게 해 주는 것이고, 비(悲)란 중생이 받는 고통을 통감해서 연민하여 그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慈愛衆生竝給與快樂(與樂), 稱爲慈;同感其苦, 憐憫衆生, 竝拔除其苦(拔苦), 稱爲悲;二者合稱爲慈悲) 이것이 스님의 사랑 방정식이라면 비록 많지는 않지만 적게라도 해 봤습니다.
 언젠가 밤늦게 시외버스를 탔습니다. 피곤한 몸을 의자 깊숙이 기대고 있는데 앞 좌석에서 어린아이의 떠드는 소리가 났습니다. 좁은 공간이라서 그런지 귀에 거슬릴 정도였지만 재미있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이 그저 예쁘기만 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버스는 승객을 내리고 또, 태운 뒤 중간 경유지를 떠나 목적지로 향해 달렸고 앞좌석은 조용해졌습니다.
그렇게 한참 지난 뒤 이번에는 앞좌석에서 아이의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속으로 ‘왜 그럴까.’ 하면서 그치지 않는 울음소리가 궁금해 상체를 바로 세운 뒤, 앉은 자세에서 머리만 앞으로 내밀어 내려다봤습니다. 그때 마치 큰 의자 위에 작은 가방 하나 놓여 있는 것처럼 아주 어린 남자아이가 혼자서 울고 있었습니다. 얼른 보기에 대여섯 살 정도 되었을까. 혼자 우는 아이가 너무 안쓰러워 머리를 쓰다듬으며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가야 울지 마라, 응, 왜 우니. 착하게 생겼네.” 하며 나름대로 진정시켜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자 울먹이던 소리가 오히려 더 커졌습니다. 마치 자다가 일어난 뒤 혼자라는 사실을 알고 울다가 엄마가 나타나면, 더 서럽게 우는 것처럼 말입니다.
“어린 아이가 늦은 시간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컴컴한 버스 안에서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을 때 두려움에 떨며 느낄 고통이 얼마나 극심할까.”라고 생각하며, 잠깐 아무 말 없이 속으로 아이가 진정되길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사이, 버스 안의 모든 이목이 저에게 집중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버스 기사도 룸미러로 힐끔거리며 필자를 쳐다보았지만 아무도 아이를 적극적으로 달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시선을 뒤로 한 채 아이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아이는 여전히 울먹이는 목소리로 무엇인가 말했지만 도대체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아이의 좌석 아래에 떨어진 휴대전화기가 보였습니다. 얼른 주워서 아이에게 “이거 네 것이니?” 하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누군가와 연락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마지막 통화자에게 전화를 걸려고 휴대폰 폴더를 여는 순간, 액정화면에 ‘관세음보살’이라는 글귀가 입력되어 있었습니다. 그 찰라 사시불공(巳時佛供 매일 오전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의식)때 하는 청사(請詞)의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중생을 구제할 때 양식이 되어 주시고, 병들은 이에게는 훌륭한 의사가 되어주시며, 길을 잃은 자에겐 길을 보여 주시고, 어두운 밤중에는 밝은 횃불 되시며, 빈궁한 자에겐 복을 베풀어 주시는 등의 모습으로, 일체중생을 고루고루 평등하게 자비로써 보살피시는 부처님…(...以大慈悲 以爲體故 救護衆生 以爲資量於諸病苦 爲作良醫 於失道者 示其正路 於暗夜中 爲作光明 於貧窮者 永得福藏 平等饒益 一切衆生....).
 특히 ‘길을 잃은 자에겐 길을 보여 주시고’라는 문구가 뇌리를 스쳤는데, 다행히 누군가와 연결이 되었습니다.
 저는 “아이와 같은 버스를 탄 승객인데, 아이가 울어서 전화를 걸었습니다.”고 하며 전화기를 아이에게 줬습니다. 아이가 누군가와 긴 통화를 했습니다. 한시름 놓았습니다. 그러는 사이 버스가 목적지에 이르러 아이를 데리고 내렸는데, 한 할머니를 보자 “할머니” 하고 뛰어갔습니다. 아이를 기다리던 할머니는 아이가 저와 함께 있는 것을 보고는 처음에 약간 놀라는 기색이었지만, 금세 상황을 알아차리고 다가와 “스님 고맙습니다.” 하며 인사했습니다. 웃으며 아이의 머리를 한 번 더 쓰다듬는 것으로 긴 인사를 대신했습니다.
 발길을 돌리며 ‘우리는 지금 길을 잃고도 잃은 줄 모르며 헤매는 것은 아닐까. 가는 길이 힘들고 아플 때 서로에게 믿음과 의지가 되는 도반은 있을까. 외롭고 어려울 때 따뜻한 마음과 부드러운 말로 지친 몸을 쉴 곳은 있을까. 부처님의 자비는 어느 곳, 어느 때나 항상 충만하지만, 스스로 받아들이지 못 하고 실천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교만과 아집으로 헛되이 시간을 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등을 자문하며 지난 시간을 떠올려 봤던 기억이 납니다. 이것이 사랑이라고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출가의 사랑은 자비이기 때문입니다.
출가한 수행자의 입장에선 깨달음이 최우선이지만 타인에 대한 사랑(利他)이 곧 자신에 대한 사랑이며, 자신에 대한 관심(自利)이 곧 타인에 대한 배려인 줄 잘 압니다. 그리고 이것이 스님의 사랑관(觀)이며, 사랑하는 방식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