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농부의 마음으로'띵'하게 살자  
필자가 주지로 있는 신흥사(新興寺)는 그야말로 심심산골에 있다. 경북 군위군 하고도 한참을 더 들어가는 도봉산(到鳳山) 자락에 자리를 잡고 있어 외부인의 발길이 뜸하다.
신라 헌덕왕 때 창건된 고찰(古刹)이기는 하지만 적막한 산중에 위치해 있다 보니 아는 이가 드물다. 때문에 행여 외부에서 사찰 위치를 묻는 전화라도 걸려오면 찾아오는 길을 설명하느라 진땀을 빼기 일쑤다.
필자가 처음 한적한 이 절에 왔을 때 늙은 진돗개가 먼저 반겼다. 처음 보는 데도 한달음에 달려나와 연신 꼬리를 흔들어댔다. 그때까지 뭐로 불렸는지 모르지만 기특한 마음에 이름을 지어주었다. 딱히 떠오르는 이름이 없어 그냥 '띵'이라고 불렀다. 흔히 '머리가 아파서 정신이 깨끗하지 않다'라는 의미로 쓰이지만 '무한 경쟁시대에 조금 모자라듯 살자'라는 뜻을 생각하며 이런 이름을 붙여준 것이다. 속내를 모르는 분들은 "그렇게 부르면 개가 띵이라는 이름처럼 바보가 될 것"이라며 한결같이 좀더 총명스러운 이름을 지어주라고 충고했다. 그럴 때면 필자는 그 분들에게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진정으로 부러워해야 할 것은 똑똑하고 빠릿빠릿하여 빈틈없어 보이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신념을 지녔어도 명리(名利)에 밝지 않아 어수룩한 모습"이라고 개 이름을 띵으로 붙인 취지를 말씀드린다. 필자가 평소에 생각하는 '인간상'이기도 하다. 이런 일이 있은 뒤 언제부터인가 사찰에서는 재미있는 일이 생겼다. 사찰 홈페이지 (www.savaha.or.kr) 게시판에서 늙은 개가 '띵 투(two)'라고 불리게 되면서 필자는 자연스레 '띵 원(one)'이 돼버린 것. 처음에는 심오한 뜻이 영판 다른 방향으로 풍자되는 것 같아 실망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기발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어떻게 불리는 것이 뭐 그리 대수랴. 필자가 의도하는 의미를 신도들이 너무도 잘 알진대. 그리고 이름 자체가 뭐 그리 중요하랴. 금강경에서 '이름은 이름일 따름'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 절에 와서 새롭게 배운 것이 있다. 농사짓는 일이다. 대부분의 고찰이 그렇듯 우리 절 경내에도 널찍한 밭이 있었다. 하지만 얼마나 오랫동안 묵혀 놓았던지 잡초만 무성했다. '밭을 그냥 놔두면 뭐하나'는 단순한 생각에 풀을 뽑고, 고랑을 판 뒤 감자를 심었다. 농사에 경험과 요령이 전무했던 탓에 싹이 올라왔을 즈음에는 어느 것이 풀이고, 감자 싹인지 도무지 분간할 수 없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행여 감자를 뽑아낼까 두려 워 김을 맬 엄두가 나지 않았다. 오죽했으면 잡초와 감자줄기를 구분할 수 있을 때 까지 함께 키울 생각까지 했을까. 

 

그럭저럭 지난 하지(夏至) 때 감자를 캤다. '감자가 정말 고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평생 농사라고는 지어본 적이 없는 '무늬만 농사꾼'인 필자의 손에서 이렇게 커준 감자가 얼마나 감사하던지. 가슴이 뭉클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농약ㆍ거름을 전혀 치지 않고 수확의 기쁨을 한껏 맛보며 잘 생긴 녀석 몇 개를 가져다 부처님전에 정성스럽게 공양까지 올렸다.  용기를 얻어 이번에는 콩을 심기로 하였다. 콩을 심던 날 감자를 심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랑한다'는 말을 되뇌었으니, 그 날은 금생(今生)에 사랑이란 말을 가장 많이 한 날이기도 하다. 그런데 며칠 뒤 밭에 가보니 싹의 윗 부분이 모두 잘려 나간 것이었다. 마치 바짝 말라 버린 콩나물 같았다. '산속이라 야생동물이 그랬겠지'라고 하면서 주위를 살피니까 암수가 정답게 보이는 산비둘기가 뒤를 힐끔거리며 종종 걸음으로 멀어져 가는게 아닌가. 비둘기들의 짓이었던 것이다.

나름대로 해결책을 강구했다. 비오는 날을 골라 파종키로 했다. 옛 말에 '장마 때는 돌도 자란다'고 하지 않았던가. '다 뜯어 먹을 수 없도록 속성으로 키우면 되겠지' 하는 마음에 비오는 날을 택해 씨앗을 심었다. 이렇게 키운 콩잎을 따다가 얼마 전 물 김치를 담갔다. 지금 밭에는 상추, 가지, 오 이, 호박, 고추, 땅콩, 옥수수, 토마토, 고구마 등 셀 수도 없는 농작물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이제는 전문 농사꾼이 다 된 느낌이다.
 발에는 늘 장화가 신겨져 있고, 손에서는 낫이나 호미가 떠날 날이 없다. 이런 필자의 모습에 주위에서는 "스님! 만날 농사만 지으면 도대체 도는 언제 닦습 니까"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한마디씩 한다. 이럴 때면 직접 농사를 한번 지어 보라고 권한다. 그리고 농사짓는 일이 곧 부처님 말씀을 깨닫는 길이라는 말도 덧붙인다.

 불가에서는 '쌀 한 톨의 무게가 일곱 근(一米七斤)'이라는 말이 있다. 실제 봄에 씨앗을 뿌리면 가을철에 그 몇 배의 소출이 생긴다. 곧 시주(施主)의 은혜다. 곡식은 때를 기다리지 않으면, 익지 않으니 인내를 가르치며, 또한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니 겸손도 배울 수 있다. 더 큰 가르침은 곡식 한 톨 자라는데도 우주의 섭리가 그대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농부가 아무리 발버둥을 친들 계절을 바꿀 수 없는 노릇 아닌가. 또 태풍이 몰려와 애써 지은 곡식을 휩쓸어 갈 수도 있다. 모든 현상이나 존재는 독립돼 있거나 스스로의 힘으로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와 하나의 생명체처럼 얽혀 생멸(生滅)한다는게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자연의 질서를 도외시한 채 인간 스스로 정해놓은 관념에 얽매여 주객이 뒤바뀐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지. 헛된 욕심에 사로잡혀 우주의 시간과 질서를 거스르고, 순리가 아닌 대립으로 일관해 끝없는 경쟁을 부추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수확의 계절' 가을을 맞아 농부의 겸허한 마음으로 이를 되새겨 보는 것은 어떨까.
 

[범수 스님(신흥사 주지)]
[매일경제 2005-09-03]